2008/11/13 17:50

얼굴을 그리면서, ‘사람얼굴’ 기억 못하는 사람

▲ Self Portrait/oil on canvas

 계절이 아름다워 사람을 더없이 감상에 젖어 들게 만들지만 그 이면에는 한때 화려했던 생명이 다해가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 동안 행복한 삶이었다고 나를 기억해 달라고, 다음 생에는 진정한 나로 태어나고 싶다고 이별을 고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때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는 시기인 것 같다.
한 젊은 화가의 자화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그림이 다소 무거워 보이기도 하고 표현이 지나치게 극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인지 시작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화가 박진홍은 수 년 동안 자화상(self portrait) 시리즈를 그림으로서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져왔고 자신에게 향하는 혹독한 여행 중에 있는 작가이다.

 

 
 
▲ Self Portrait/oil on canvas

 박진홍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갤러리 근처 한 카페에서였다. 그곳 분위기에 비해서 조금 무겁게 느껴지는 그림이 시선을 끌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우연히 그림과 마주치기를 두어 번. 어느 날 갤러리에서의 전시소식은 반가운 일이었다. 작가를 만나기 전까지 그림이 작가 자신을 그린 것인지 알지를 못했다. 작가를 보자마자 그림 속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에 흥미로웠다. 보통의 작품들은 어느 정도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과정을 거친 후에야 작품이 작가를 많이 닮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만, 작품자체가 바로 작가자신임을 단번에 알아봤으니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치열했던 인생 제 1막에 이별을 고하다. 
 박진홍의 그림들은 모두 자화상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또렷하게 보기 좋게 옮겨놓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실체를 깊숙이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겉모습만 보지 말고 마음 깊은 곳의 ‘나’라는 존재를 알아달라고 처절하게 외쳐대고 있는 것 같다.

 그림 속 표현들은 온통 어두운 면들과 날카로운 선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두운 면과 선의 이면에는 수없이 많은 밝음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거친 선과 면 들은 어두운 장막을 뚫고 나오기 위한 통과의례인 것처럼 보인다. 날카로운 선과 어두운 색감들은 작가의 손에서 극적인 표현과정을 거친 후에 진정한 ‘나’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만 같다. 

 
 
 

▲ Self Portrait/oil on canvas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또, 어두움에서 밝은 곳으로 극과 극의 사이를 오가며 무언가 메시지를 끊임없이 토해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시작이 밝음이었는지 어두움이었는지는 알 수는 없다. ‘나’에게 좀 더 가까이 도달하기 위해 선 하나를 긋고 다시 지우고 또 다시 긋고, 면을 채우고 그 면을 지워내고 또 다시 채워나가고... 이 모두가 나에게 조금씩 다가가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다른 세상을 파괴하려는 존재같이 그림 속에서 생성과 파괴의 행위가 반복된다. 박진홍의 자화상은 수없이 반복된 과정을 거쳐내며 어두움은 빛을 향하게 되고 날카롭고 반복된 선들이 결국엔 부드러움을 만들어내고 만다. 그림들은 작가에게 치열했던 인생의 제 1막을 마무리하라며 화려했던 시절에게 이별을 고하고 있는 것만 같다.  

 

▲ Self Portrait/oil on canvas


얼굴을 그리면서도 사람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박진홍은 초등학교시절 무명화가의 초상화를 보고 깊은 감성을 갖게 되어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만으로는 감상적으로 보이지만 그가 살아온 시간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한다. 가끔 비판 아닌 비판도 받아야 했고 자신의 알 수 없는 강박관념 때문에 4년 동안이나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가족이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려야만 했고 전시가 끝나면 빚을 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과거의 그림에는 절대로 연연해 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는 사람이라며 사람얼굴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사람인상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그림 속 인물이 모두 부동의 정면을 향하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부동의 자세가 형태적으로 가장 완벽하다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그 속에서 작가의 삶에 대한 변함없는 자세와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고집스런 다짐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로의 여행길에서 만난 화가는 그 혹독한 과정을 달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 초연한 모습이었다. 아직은 경험하고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흡수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듯이 말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인생은 끊임없는 여행길인 것을.

칼럼니스트 김수진 (예술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dkbnews@dk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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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티아라 2010/04/22 15:14 address edit & 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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